2017.02.11 19:02

(13강) 하나님의 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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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4:1-9http://onlycross.net/videos/exo/exo-04010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6.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설교>

기독교인이 기적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은 기적을 체험하게 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에게 함께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바꾸어 생각하면 성경의 말씀만으로는 확실하게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기적을 체험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에 자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실제로 믿음에 도움이 될까요? 이에 대한 답은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이 체험 이후로 하나님만을 신앙하게 되었다면 기적은 분명 우리의 믿음에 도움이 되고 유익하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기적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첫 번째는 모세의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셨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모세의 손에 문둥병이 생기게 하셨다가 다시 깨끗하게 하신 것이고, 세 번째는 나일 강 물을 떠다가 땅에 부으면 그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세 기적 중 첫째, 둘째는 모세가 체험한 것이지만 세 번째는 애굽에 들어갔을 때 체험하게 될 기적입니다. 하지만 지팡이가 뱀이 되거나 손에 문둥병이 생기는 것은 분명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기적을 체험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달라졌을까요? 10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말합니다.

 

 

기적을 체험한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어 담대하게 애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자신이 말을 잘 못한다는 구실로 애굽으로 가기를 사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설득하여 자신을 따라 애굽에게 나오게 하려면 말 재주가 있어야 하는데 자신은 그런 재주가 없음을 구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기적이 믿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는 모세만이 아니라 갈라진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홍해 기적만이 아니라 광야에서도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한가지의 기적만으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환경과 형편에 따라 불평과 원망으로 반응했습니다. 이것으로 기적이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 붙들어 놓는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모세에게 기적을 체험하게 하신 이유가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하고 담대하게 애굽으로 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의도는 실패한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의 말 재주를 구실로 애굽으로 가기를 사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은 다른 방향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팡이가 가늘고 길기 때문에 지팡이의 모양을 따라 뱀이 되게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이라면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팡이로 뱀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자 하신 의도라면 뱀보다는 큰 호랑이, 또는 곰이 되게 하신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뱀이 되게 하신 기적으로 모세에게 말씀하고자 하신 것이 있습니다.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뱀은 두려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애굽으로 가는 모세가 부딪혀야 할 현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뱀이 애굽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뱀과 같은 두려운 존재에게 이스라엘이 붙들려 있는 것이고 모세는 그러한 현실 세계로 보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뱀을 모세가 이겨야 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모세는 뱀 앞에서 피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런 모세에게 손을 내밀어 뱀의 꼬리를 잡으라 하시고 꼬리를 잡으니 뱀이 그의 손에서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이것은 모세가 뱀을 이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뱀을 이길 것을 의미한다면 꼬리가 아닌 머리를 잡으라고 하셨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리를 잡으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뱀의 머리를 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는다 해도 뱀에게 상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애굽으로 보냄 받은 모세의 현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바로의 머리를 하나님이 잡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셨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팡이는 하찮은 것입니다. 이것으로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은 뱀에게 장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하찮게 여기는 우리의 실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뱀을 지팡이처럼 여기고 뱀에 대한 경계가 없는 것이 이스라엘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뱀이 애굽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애굽이라는 국가로 생각하지 말고 애굽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이스라엘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애굽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애굽의 사고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애굽의 사고방식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책임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고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애굽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곧 뱀에게 장악된 것인데 이스라엘은 그 같은 심각성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다만 애굽이라는 나라에 의해 고통 받는 것만 생각할 뿐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우리의 실상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 살아가고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그것이 세상의 사고방식을 따라 멸망으로 가는 것임을 모릅니다. 뱀에게 붙들려 있으면서도 뱀을 마치 지팡이처럼 하찮게 취급합니다. 뱀에게 붙들린 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뱀의 머리를 쥐고 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뱀에게 상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게 된 은혜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실에 있는 이스라엘의 본질적 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이 손에 문둥병이 생겼다가 다시 본래의 손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문둥병은 저주를 뜻합니다. 모세의 손은 표면적으로는 정상이었지만 그 본질은 저주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애굽도 이스라엘도 문둥병에 걸린 더러운 존재이고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애굽이나 이스라엘과 다를까요?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저주 아래 있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를 신자로 생각합니다. 저주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자로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표면적인 모습만 보면서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이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로 가지 못하도록 훼방한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피는 죽음, 곧 심판을 의미합니다(계 6:12). 따라서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는 것은 온 땅이 죽음의 땅이며 심판의 땅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그러한 세계로 보냄으로 이스라엘을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이끌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죽음의 세력에서 구출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유월절의 의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참된 기적은 죽음의 세계에서 구출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애굽에 보내어 이스라엘을 구출하게 하셨다면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죽음에서 구출하셨습니다. 그 표징이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음을 십자가를 표징으로 증거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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