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5 15:35

(19강) 바로의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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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5;3-9http://onlycross.net/videos/exo/exo-05030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5.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6.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7.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8.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9.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설교>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일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지만 그 믿음이 우리의 삶에 실제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이 믿음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말은 어떤 일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현재에 대해서는 늘 불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가 원한 대로 모든 일을 이뤄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자기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일하신다는 것은 인간의 뜻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자기의 뜻을 내려놓게 합니다. 따라서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듯하지만 사실은 관념에만 존재하는 우상일 뿐입니다.

 

 

모세가 바로를 만나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정작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반응합니다.

 

 

바로에게는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의 신이지 바로의 신은 아닙니다. 또한 바로가 모세의 말을 들어준다고 해서 바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없고 오히려 손해가 될 뿐입니다.

 

 

4,5절을 보면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라고 말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광야로 떠난다면 그동안 해 왔던 노역을 쉬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경제적인 손실이 발생할 것을 계산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로의 계산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오늘 우리의 계산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의 계산을 따라 타협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의 실제 모습인 것입니다.

 

 

모세의 요구를 들은 바로는 벽돌을 만들 때 짚을 주지 말고 이스라엘 스스로 짚을 구해서 벽돌을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스스로 짚을 구해야 한다면 그만큼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만들어 오던 벽돌의 수효를 채우기가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바로는 벽돌의 수효를 줄이지 말라고 합니다. 결국 노역이 가중된 것입니다.

 

 

9절을 보면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노역을 더 힘들게 만든 바로의 의도입니다.

 

 

바로는 모세의 말을 거짓말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거짓말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선동 될 것을 염려해서 노동을 무겁게 하여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고자 합니다. 쉽게 말해서 몸을 힘들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세우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 바로의 속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만난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사실적으로는 하나님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상황이 나빠진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 보내지만 않았어도 이스라엘은 예전처럼 자신들이 짚을 구할 필요 없이 정해진 수량의 벽돌을 구우며 살았을 것입니다.

 

 

20-21절을 보면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가중된 노역으로 힘들었던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바로를 찾아가 호소했지만 바로에게 거절을 당하고 돌아오던 길에 모세와 아론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의 반응은 원망입니다.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이 장로들을 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적을 행했을 때 여호와께 머리 숙여 경배를 했습니다(출 4:31). 그런데 여호와를 경배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원망의 마음만 남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고난을 받고 있는 자신들을 도와서 편안하게 해주실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그들의 솔직한 마음이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하지만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노역만 가중되어서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처한 형편에서 모세와 아론에 대해 원망을 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들이 예상했던 계산이 모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상황도 본문의 내용대로 흘러간다면 우리 역시 마음과 생각이 흔들리며 혼란스러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앙함으로 인해 잘 되기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현재가 편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형편은 더 힘들게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더 깊은 혼란과 갈등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만나서 드러난 것은 ‘여호와가 누구이기에’라는 말로 반응하는 바로의 악함입니다. 여호와의 존재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바로야 말로 당장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생각대로 당장 바로를 심판해 버리고 이스라엘을 구해내신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장 바로를 심판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형편이 더 악화되는 것을 두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또한 바로와 다르지 않음을 드러내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바로가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이득을 계산 한 것처럼 이스라엘 또한 자기 이득을 좇는 계산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한 존재일 뿐임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들과 같은 계산속으로 하나님을 우리 생각에 모셔두고 있을 뿐임을 보게 하십니다.

 

 

이러한 일을 통해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 활동은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고통을 멈추게 하시고 새로운 편안 삶을 제공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생각하고 계산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지극히 인간중심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우상이라는 것을 성경이 증거 합니다.

 

 

때문에 성경이 말씀하고 가리키는 바를 따라가면서 성경이 보게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생각했던 신이 우상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활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는 나 자신이 바로와 다르지 않은 계산을 하면서 살았음을 알게 되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열심히 구원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증표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항변하고 싶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이런 일이 있게 하십니까?’라고 항변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신앙한 적이 없다’는 자기 실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예수 안에 붙들어 놓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활동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에 의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으며 나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악화된다 해도 멈추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활동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에게 뜻을 세우시고 일하시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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