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7 16:31

(28강) 둘째 재앙

조회 수 156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출 8:1-7http://onlycross.net/videos/exo/exo-08010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3.개구리가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4.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6.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7.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설교>

하나님의 구원은 자기중심의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롭고 낯선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 방식에 순종하게 되는지 아닌지의 여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 받은 신자가 자신을 구원한 하나님의 방식을 알고 순종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십자가입니다.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와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게 된 현실에서 십자가라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현실에서 자기의 실천으로 의를 이루며 모든 죄를 청산하고 구원에 이를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어떤 행함도 거부합니다. 오직 하늘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만 의로 인정하며 예수님이 이루신 의 안에서 택한 자기 백성만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구원 방식임을 알게 되면 자연히 자신의 어떤 행함에 대해서도 의의 가치를 두지 않으면서 다만 예수님의 행하심에만 모든 가치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신자는 이렇게 증거 되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신자라고 해서 구원 받지 못한 사람과 인간성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죄가 들어온 세상에서 죄의 유혹을 받으며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도 애굽과 동일하게 완악한 인간이며 사망 아래 있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애굽과 동일하게 하나님이 심판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스라엘과 애굽의 구별이 없는 피, 개구리, 이 재앙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네 번째 파리 재앙부터는 이스라엘과 애굽이 거주하는 땅을 구분하심으로써 구원 받을 자와 구원 받지 못할 자가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고 말씀합니다.

 

 

바로가 여호와의 말씀을 거절하면 애굽 온 땅을 치겠다는 것을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심판의 두 번째 도구가 개구리입니다. 과연 개구리가 온 땅에 올라오는 것이 바로에게 두려움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무엇보다 인간이 굴복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말씀 드린 것처럼 개구리는 심판의 강력한 도구라고 하기에는 뭔가 미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구리가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3,4절)는 말씀처럼 개구리가 침실과 침상은 물론이고 그릇에까지 들어간다면 괴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경험하기에는 분명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7절에서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고 말씀한 것처럼 물이 피가 되게 한 첫째 재앙을 흉내 낸 애굽의 요술사들도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합니다. 이것을 보는 바로가 하나님의 재앙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재앙은 실패한 것일까요? 재앙의 의도가 바로를 혼내고 두렵게 하는 것이라면 실패한 것입니다. 하지만 재앙의 의도가 그것이라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바로가 굴복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재앙으로 상대하셨을 것입니다.

 

 

강물이 피가 되는 첫째 재앙은 마실 물이 없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애굽 온 땅이 피, 즉 죽음의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벗어나야 하는 중대한 이유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앙은 이스라엘에게 애굽의 실상을 보여주시면서 애굽은 함께 할 수 없는 곳임을 알게 하시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입니다.

 

 

계 16:13,14을 보면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고 말합니다.

 

 

여기 보면 더러운 영을 귀신의 영이라 하고 개구리 같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나일강에서 개구리가 올라와 애굽의 온 땅에 가득하게 한 것은 애굽이 더러운 영으로 덮인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애굽이 부와 영광을 누린다 해도 결국은 더러운 영으로 덮인 심판의 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바로의 궁과 침실과 침상까지 기어오릅니다. 신하들의 집에까지 개구리로 가득합니다. 바로의 궁이라면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 화려함으로 갖추어져 있을 것입니다. 바로의 신하도 부를 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더러운 영으로 가득한 심판의 세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둘째 재앙에서 바로 이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애굽과 동일합니다. 그들 역시 더러운 영에 사로 잡혀서 애굽을 부러워하며 애굽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부요와 권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이 부럽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부르며 부요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모습일 뿐입니다. 개구리에게 점령된 애굽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러운 것을 더러운 것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을 더러운 것으로 보지 못하면 우리는 더러운 것을 추구하면서 더러운 것으로 자기만족을 삼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자기에 대해서는 소경이 되어 자신의 곤고하고 불쌍함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간절함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우상의 수준에 머무를 뿐입니다.

 

 

고후 3:4,5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만족이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만족을 위해 일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일이 만족이 되는 신자로 세워 가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이 만족이 될 때 세상의 것으로 만족해하고자 했던 것들을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을 가져서 자기 신앙에 만족하고자 한 것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에 만족하고자 하는 것도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애굽에 대한 재앙을 통해서 세상의 최후 실상을 미리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야 말로 새언약이라는 하나님의 구원방식으로 우리에게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우리의 모든 것은 낱낱이 폭로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또한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심판의 존재이고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자라는 것이 드러나면 십자가라는 새언약이 아니고는 구원될 수 없는 자신을 보게 도면서 비로소 십자가만 자랑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술사들도 강에서 개구리가 올라오게 하는 것을 흉내 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굴복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욕망일 뿐입니다. 지금도 인간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감으로 자기 일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 하나하나는 스스로를 심판이 합당한 더러운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이스라엘도 애굽과 동일하게 심판에 속해 있습니다. 똑같이 죄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점은 그들에게는 용서가 언약의 내용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구원이기 때문에 세상은 만족도 부러움도 될 수 없는 헛된 것일 뿐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성경본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설교 원고는 없습니다 신윤식 2022.01.01 950
공지 암, 옵, 욘 성경강해 방으로 옮겼습니다. 신윤식 2011.02.28 7277
공지 이전 홈페이지 수요일설교 들어가기 은석교회 2010.01.01 40138
260 (30강) 셋째 재앙 신윤식 2017.06.10 1696
259 (25강) 하나님의 군대 신윤식 2017.05.06 1694
258 (27강) 첫째 재앙 신윤식 2017.05.20 1689
257 (22강) 듣지 않음 신윤식 2017.04.15 1627
256 (23강) 입이 둔한 자 신윤식 2017.04.22 1622
255 출 35:1-3 (147강) 거룩한 날 신윤식 2020.09.19 1620
254 (32강) 바로의 타협 신윤식 2017.07.01 1613
253 (31강) 넷째 재앙 신윤식 2017.06.24 1609
252 (20강) 원망 신윤식 2017.04.01 1603
251 출 40:9-13 (152강) 거룩하게 하라 신윤식 2020.10.24 1587
250 (29강) 현실 모면 신윤식 2017.06.03 1572
» (28강) 둘째 재앙 신윤식 2017.05.27 1566
248 (34강) 여섯째 재앙 신윤식 2017.07.15 1451
247 (45강) 표적이 될지라 신윤식 2017.10.07 1445
246 (36강) 일곱째 재앙 신윤식 2017.08.05 1428
245 (44강) 여호와의 유월절 신윤식 2017.09.30 1415
244 (35강) 경고의 말씀 신윤식 2017.07.29 1400
243 (33강) 다섯째 재앙 신윤식 2017.07.08 1389
242 출 32:25-29 (133강) 헌신 신윤식 2020.05.23 1385
241 (40강) 여덟째 재앙 신윤식 2017.09.02 138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