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31 15:22

(65강) 안식일

조회 수 78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출 16:21-30http://onlycross.net/videos/exo/exo-16213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1.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22.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리매

23.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24.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25.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26.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27.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2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29.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30.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

 

 

<설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망을 들으시고 만나를 주셨지만 만나는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만나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면 만나를 먹는데 있어서 아무런 제약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만나를 거두고 먹는 데 있어서 법을 세우십니다.

 

 

만나는 한 사람에 한 오멜 씩만 거두라고 하시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일곱 째 날에는 만나를 얻을 수 없으니 여섯 째 날에 갑절을 거두어 일곱 째 날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만나에 이러한 법이 담겨 있다는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만나를 이스라엘의 양식에 대한 욕구를 해결해 주기 위한 것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원망으로 얼룩진 장소입니다.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셔서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해도 원망은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육신을 향한 인간의 욕구가 끝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원망의 이유가 해소된다 해도 인간에게 원망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이스라엘의 원망의 장소임과 동시에 우리가 원망하며 살아가는 삶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만나를 마음껏 거두라고 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아침에 만나를 지면에 가득하게 하시고 먹고 싶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남겨서 다음 날에도 먹게 하시면 안되는 것일까요? 이것이 육신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소원이지만 하나님은 육신으로 육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백성 됨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1절에 보면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고 말합니다.

 

 

아침마다 먹을 만큼만 거두고 남은 것은 햇볕에 녹아 버렸다면 하루하루 주어진 만나는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에 해당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감을 실감하게 할 일용할 양식인 것입니다. 만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한 오멜 씩 거두어 그 날의 양식으로 삼는 것이 전부입니다.

 

 

먹고 남은 것을 내일을 위해서 남겨둬도 될 법한데 하나님은 남겨둔 것은 모두 썩어서 먹을 수 없게 하십니다. 이러한 규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만나에 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먹고 남은 것을 남겨두는 것을 우리의 삶의 지혜고 방식이기도 합니다. 남는 것은 내일 위해서 남겨두는 것이 내일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우리의 습관인 것입니다. 혹시라도 내일 만나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남겨두는 것이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만나를 남겨두는 것은 내 인생을 내가 지키고 내 방법과 힘으로 책임지고자 하는 속성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겨둔 만나를 썩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힘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살아가는 인생임을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장차 약속의 땅에서 살게 될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3,24절에 보면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고 말합니다.

 

 

여섯째 날에 갑절로 거둔 것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간수해도 냄새도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습니다. 똑같은 만나인데 왜 임의대로 남기면 썩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안식일을 위해 남기면 썩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으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방법이나 수단을 허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육신을 위해 먹을 것을 주신 것이 은혜라는 것이 아니라 원망을 들으시고도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은혜의 세계에 존재하는 이스라엘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방법과 수단입니다. 즉 내 몸은 내 힘으로 내가 지킨다는 사고방식을 용납하지 않으심을 만나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26,27절을 보면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고 말합니다.

 

 

일곱째 날에도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 육신에 더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안식일에 먹을 만나가 없어서 나간 것이 아닙니다. 여섯째 날에 거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더 거둘 수 있을까 싶어서 나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만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원하는 것을 거두어서 만족하고자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앙도 은혜의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으로 힘쓰고 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는 속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자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부족함이 없는 것이 신앙세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다 이루신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십자가를 믿는다면 인간의 방식과 행함은 하나님이 허용하지 않으시고 아무 가치가 없다는 사실 앞에서 굴복하고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공로만 높여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

 

 

일곱째 날은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신 완성의 날입니다. 완성의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부족함이 없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 같이 되고자 하는 자기만족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현재 인간의 실존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으로 원하는 것을 채우고 싶어 하기 때문에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 6:49-51절에 보면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는 것은 만나가 생명이 되는 참된 떡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참된 생명의 떡으로 오셨고 오직 그 떡으로만 영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예수님은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는 완성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이 곧 완성이고 충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신자에게는 자기 방식, 자기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것이 안식일입니다.

 

 

만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배우게 하기 위한 양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만나로 오신 분이 그리스도라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원망의 존재인 우리가 무엇으로 사는가를 배우고 죽든지 살든지 주를 위해 살 것을 가르치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안식일은 예수님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율법이고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이 이루신 생명의 구원으로 기뻐하는 것이 안식일의 완성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리스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이것 가지고는 안되겠다’는 불안감이 우리의 방식과 수단과 노력을 앞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남겼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은 받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냄새나고 벌레가 생겨 쓸모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안식이라는 완성에 있게 한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성경본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설교 원고는 없습니다 신윤식 2022.01.01 950
공지 암, 옵, 욘 성경강해 방으로 옮겼습니다. 신윤식 2011.02.28 7276
공지 이전 홈페이지 수요일설교 들어가기 은석교회 2010.01.01 40118
160 아 1:5-8 (3강) 어여쁜 자 신윤식 2021.03.20 611
159 아 1:3 (2강) 사랑하는 이유 신윤식 2021.03.13 640
158 아 1:1-4 (1강) 솔로몬의 아가 신윤식 2021.03.06 903
157 출 40:17-21 (153강) 성막을 세우니라 신윤식 2020.12.31 625
156 출 40:9-13 (152강) 거룩하게 하라 신윤식 2020.10.24 1587
155 출 39:42-43 (151강) 명령하신 대로 1 신윤식 2020.10.17 1158
154 출 36:8-13 (150강) 성막을 만들다 신윤식 2020.10.10 28231
153 출 35:30-36:1 (149강) 지혜로운 자 신윤식 2020.10.03 795
152 출 35:20-29 (148강) 자원하여 드린 예물 신윤식 2020.09.26 708
151 출 35:1-3 (147강) 거룩한 날 신윤식 2020.09.19 1619
150 출 34:29-35 (146강) 얼굴의 광채 신윤식 2020.09.05 795
149 출 34:27-28 (145강) 여호와와 함께 신윤식 2020.08.29 641
148 출 34:25-28 (144강) 새끼와 어미 신윤식 2020.08.08 972
147 출 34:21-24 (143강) 쉴지니 신윤식 2020.08.01 594
146 출 34:18-20 (142강) 무교절의 의미 신윤식 2020.07.25 12488
145 출 34:11-17 (141강) 질투의 하나님 신윤식 2020.07.18 706
144 출 34:10 (140강) 언약을 세우나니 신윤식 2020.07.11 514
143 출 34:1-9 (139강) 다시 만든 돌판 신윤식 2020.07.04 5162
142 출 33:17-23 (138강) 내가 하리니 신윤식 2020.06.27 15881
141 출 33:12-16 (137강) 무엇으로 알리이까 신윤식 2020.06.20 793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5 Next
/ 15